한번 계산해보자

AI를 쓴다는 것은, 작은 범위에서 보면 내 옆에 직원을 하나 두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직원을 곁에 둘 때 얼마의 비용이 나갈지 계산해보자.

2026년 최저임금은 시간급 10,320원이다. 주 40시간 기준으로 월 환산하면 2,156,880원이다. 여기에 4대보험 사업주 부담분과 퇴직금 적립까지 더하면 실제로 사람 한 명을 쓰는 데 드는 돈은 월 240만 원 안팎이 된다. (출처: 고용노동부, 2026년 적용 최저임금 고시)

그리고 이건 최저임금이다. 문서를 정리하고, 자료를 찾고, 초안을 잡고, 코드를 쓰고, 번역을 하고, 회의록을 요약하는 사람. 이 정도 역량이면 최저임금으로는 못 구한다. 현실적으로는 300만 원 이상이다.

한편, AI 구독료는 얼마인가. 무료로 쓸 수 있는 것도 있고, 제대로 쓰려고 해도 월 몇만 원 수준이다. 물론 많게는 수십만 원인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실 이건 계산할 것도 없는 문제다.

커피 몇 잔 값으로 일해줄 직원, 그런데 채용을 미루는 이유

상황이 이런데도 아직 AI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를 들어보면 대개 비슷하다. 매달 돈이 나가는 게 아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사용할 일도 많지 않을 것 같다는 대답이다.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쓴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 넷플릭스는 뭐라도 보니까 아깝지 않은데, 이건 안 쓰면 그냥 사라지는 돈처럼 느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 달에 커피 몇 잔 값으로, 나보다 더 참을성 있고 밤에도 안 자고 짜증도 안 내는,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함께해주는 직원 한 명을 둘 수 있다. 그 직원은 내가 하기 싫은 일, 귀찮은 일, 시간만 잡아먹는 일을 대신 해준다. 그것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늘 내 입장에서, 나를 더욱 알아가며, 어느 순간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그런 직원이 되어 곁을 지켜준다.

아직 써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한 달만 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달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끊으면 된다. 끊는 데 위약금도 없다. 사람을 뽑았다가 안 맞아서 내보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이 직원에게는 문제가 있다

여기까지가 보통의 이야기이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다.

이 직원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 직원이 실수를 하면 그 실수는 그 사람의 이력에 남는다. 그래서 다음번엔 조심한다. 또 큰 실수를 하게 되면 그에 맞는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의 무게를 알기에 사람은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다.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일을 잘못해도 아무 책임감도, 죄책감도 없다. 그래서 틀린 걸 아주 자신 있게 말한다. 존재하지 않는 법 조항을 만들어내고, 없는 논문을 인용하고, 잘못된 숫자를 소수점까지 붙여서 내놓는다. 그것도 아주 그럴듯한 문장으로.

이게 왜 위험하냐면, 내가 모르는 분야일수록 검증을 못 하기 때문이다. 아는 분야에서는 틀린 게 보인다. 모르는 분야에서는 안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AI를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분야가 바로 그 모르는 분야다.

두 번째 문제는 기억이다. 이 직원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본적으로 모른다. 우리 조직이 왜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지, 그 담당자가 왜 그 말에 예민한지, 작년에 비슷한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 — 그런 맥락이 없다. 맥락 없는 조언은 대체로 교과서 같은 소리가 된다. 물론 요즘 모델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와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잠깐, 그런데 사람 직원은 어떤가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럼 믿지도 못하는 직원을 어떻게 쓰라는 건가.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자. 사람 직원은 다른가?

신입 직원을 뽑았다고 첫날부터 완벽하게 일하는 사람은 없다. 실수도 하고, 시킨 것과 다른 걸 가져오기도 하고, 엉뚱한 데 시간을 쓰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일한다. 가르치고, 결과를 같이 확인하고, 중요한 일은 두 번 세 번 본다. 원래 직원과 일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회계를 모르는 사장이 회계 담당자를 두고, 코드를 모르는 기획자가 개발자와 일한다. 그 분야를 완벽하게 검증할 수 있어서 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일해왔다.

그러니까 이상한 건 AI가 아니라 우리의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몇만 원짜리 직원에게, 240만 원짜리 직원에게도 하지 않던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믿게 해달라는 요구 말이다.

사람 직원의 보고는 확인하면서, AI가 준 답은 그대로 믿으려 한다. 그러다 틀리면 배신감을 느낀다. 애초에 그런 계약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쓰라는 건가

정리해보자. AI를 쓴다는 건 직원을 하나 두는 일이고, 직원을 둔다는 건 원래 이런 일이다.

일을 골라서 맡기고, 결과를 같이 보고, 최종 책임은 내가 진다.

새로 생긴 부담이 아니다. 사람 직원과 일할 때도 늘 하던 일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직원의 월급이 몇만 원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나는 두 가지 기준을 갖고 이 직원과 일한다.

첫째, 답을 시키지 않고 시작을 시킨다.

아는 분야에서는 결과물을 거의 그대로 쓴다. 틀리면 내 눈에 보이니까. 모르는 분야에서는 결론이 아니라 방향을 얻는다. 뭘 찾아봐야 하는지, 어떤 단어로 물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전에는 그 첫 단추를 못 끼워서 시작조차 못 했으니 말이다.

둘째, 틀렸을 때의 무게로 나눈다.

블로그 글에 어색한 표현이 하나 들어가는 것과, 공식 문서에 없는 법 조항이 들어가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가벼운 것은 그냥 쓰고, 무거운 것만 원본을 찾아 확인한다. 전부 다 확인하려 들면 직원을 둔 의미가 없다.

재밌지 않은가. 능력이 필요 없어진 시대라고들 하는데, 결국 능력 이야기로 돌아온다. 다만 종류가 바뀌었을 뿐이다.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시키는 능력으로.

그러다 이상한 걸 느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직원과 일한 지 몇 년이 됐다. 그 사이 나는 꽤 많은 것을 만들었다. 예전 같으면 몇 년을 배워야 겨우 손댈 수 있던 것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걸 느꼈다.

확인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직원이 해온 걸 하나하나 다 확인했다. 코드가 진짜 도는지, 그 법 조항이 진짜 있는지, 숫자가 맞는지. 그런데 요즘은 그냥 넘어가는 게 많다. 몇 년을 같이 일해보니 어떤 일은 맡겨도 된다는 걸 알게 됐고, 실제로 이 직원이 예전보다 일을 잘하게 되기도 했다.

처음엔 문서 요약만 시켰다. 그다음엔 초안을 시켰고, 그다음엔 코드를 시켰고, 지금은 시스템 하나를 통째로 맡기기도 한다. 맡기는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넓힌 것도 있지만, 넓혀도 문제가 없어져서 넓어진 쪽이 더 크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어디까지 갈까. 지금은 내 일의 일부를 맡기고 있지만, 이 범위가 계속 넓어지면 마지막에는 뭐가 남을까. 대신 시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게, 과연 있기는 할까?

며칠을 붙잡고 있었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엉뚱한 데서 실마리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