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리자 평소처럼 샤워하고 셔츠를 다리고 지하철을 탄 사람이 있다고 한다. 개찰구를 지나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야 어제 사표를 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는 이야기인데 들어본적이 있는가?
처음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났는데 나도 며칠 전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로 내가 여기 왜 왔왔지? 한 순간이 생각나니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아주 태연하게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될 때가 있다.
습관이 판단을 앞지르는 캡쳐 오류
가장 흔한 유형은 습관이 판단을 앞질러 버리는 실수다. 앞의 퇴사 출근이 여기에 해당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캡처 오류(capture error)라고 부른다고 한다. 익숙한 행동이 원래 하려던 행동을 앞질러 가는 것을 말한다.
매일 반복하던 동선이 뇌에 강하게 새겨져 있어서, 오늘은 다르다는 정보가 끼어들 틈이 없어져 버리는 샘이다.
영국의 인지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은 이런 무심결의 실수를 행위 착오(action slip)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것을 뇌가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증거로 설명했다고 한다. 반복되는 일을 자동으로 처리해 두어야 새로운 문제에 뇌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퇴사 다음 날 출근한 사람은 뇌가 지나치게 성실하게 일한 결과에 가깝다. 위로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목적만 남고 수단이 사라지는 경우
두 번째 유형은 무엇으로 하는지를 통째로 빼먹는 경우다.
- 세차를 하러 나섰다가 세차장이 집에서 가까운 것이 생각나 차를 두고 걸어갔다는 사람. 도착해서야 세차할 차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 지방 출장을 자기 차로 다녀온 뒤, 돌아올 때는 편하게 기차를 탄 사람. 며칠 뒤 자기 차가 어디 갔는지 한참을 찾았다고 한다.
- 검색을 하려고 브라우저를 켜서, 구글 검색창에 또박또박 '구글'이라고 쳐 넣은 사람. 이미 구글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목적인 세차와 귀가와 검색에만 집중하느라 그것을 이루는 수단(자동차·검색창)이라는 맥락이 통째로 빠진 상태다. 우리 뇌의 작업 기억은 용량이 생각보다 작다. 작업 기억은 지금 하는 일에 필요한 정보를 잠깐 붙잡아 두는 기능인데, 한 번에 붙잡아 두는 양이 서너 덩어리 남짓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그 자리를 다 차지하고나면 수단은 밀려나 버린다.

동승자를 두고 출발한 사례
여기서부터는 좀도 심각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주유소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해보려고한다. 부부가 같이 주유를 하러 나갔다가, 남편이 잠깐 주유소 옆 편의점에 들른 사이 아내가 주유를 마치고 혼자 출발했다고 한다.
한참 뒤 남편에게서 어디갔나며 전화가 와서 남편을 놓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 남편 | 아내 |
|---|---|
| 지금 어디야? | 나 집에 가는 길이지 |
| …그럼 나는? | (정적) 아, 내가 자기를 두고 왔네 |
이런 동승자 망각은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뒷좌석에 아이를 두고 내리는 사고를 막으려고,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처럼 뒷좌석 확인 알림 기능을 넣은 차량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
급할수록 좁아지는 시야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유형은 똑똑하게 움직이려다 도로 원점으로 돌아온 경우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창밖으로 자기가 다음에 갈아탈 버스가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을 봤다고 한다. 저걸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뒷문으로 내려서 앞으로 달려가 그 버스 앞문으로 탔다. 스스로 발이 빠르다고 뿌듯해했는데, 두 정거장쯤 지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이거… 방금 내가 내렸던 그 버스잖아?
뒷문으로 내려서 앞문으로 다시 탄 셈이다. 급할수록 눈에 들어오는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마스크와 몸에 밴 동작
이번엔 좀 짧은 이야기다. 마스크를 낀 채로 습관처럼 침을 뱉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과는 적지 않겠다. 몸에 밴 습관 하나가 상황 판단할 새도 없이 나타나는 지 알려주는 사례이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일상과 실수
이 이야기들이 남의 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전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어서다.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일상을 자동화해 두고, 그만큼 오늘은 다르다는 정보가 끼어들 자리도 줄어든다.
어이없는 짓을 한 날이라고 해서 자책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뇌가 그만큼 열심히 돌아간 흔적이기도 하다. 다만 중요한 순간 앞에서만은 잠깐 멈춰서 지금 자신도 모르는 행동들이 문제가 되고 있진 않을지 잠시 확인해보는 것도 중요하다.